[다시 찾는 울산 문화유산]운치 있는 정자 오르니 시 한 수 절로
작성자 이복근 (211.♡.26.24)
울산의 정자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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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바위 옆으로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는 입암정. 경상일보 자료사진

영남 3대루 으뜸 태화루 시인·묵객 줄잇던 창작 산실
임란때 병화로 소실 현판만 남아…2011년 복원 예정
경관 수려한 곳마다 들어선 작천정·입암정 등도 유명


맑은 물이 흐르고 경관이 수려한 깎아지른 듯한 암벽 위에는 어느 곳에나 그림 같은 정자가 세워져 있다. 뭇 선비들은 이 곳 정자에서 자연을 노래하고, 한담과 풍류를 즐겼다.

또한 정자 속에 숱한 시가문학을 낳았다. 시인 묵객들은 시구를 새긴 주련을 기둥에 달거나 정자의 성격을 표현하는 현판을 달기도 했다.

'정자의 나라' 조선시대 울산에는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태화루가 영남 3대루로 명성을 떨쳤다. 또 이휴정, 입암정, 관서정, 백련정 등의 정자가 태화강과 지천을 내려다 보며 숱한 정자문화를 낳았다.




#태화루

영남의 3루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주변경관이 수려해서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 바로 태화루다. 신라말기 선덕여왕(643년)때 건립돼 조선 선조때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사라진 뒤 400년 이상 흔적으로만 전하는 누각건물이다.

태화루는 신라 시대부터 1000년 가까이 울산의 명승(名勝)이었다. 고려말 정포(鄭浦)는 울산 8경을 노래했고, 고려 명종때 김극기나 이곡 등 수 많은 선비들이 시문(詩文)을 남겨 문학의 산실 역할을 했다.

울산을 방문한 몇 안되는 군왕 중 하나인 고려 성종은 태화루와 악연을 갖고 있다. 성종은 997년 9월 울산의 태화루에서 신하들과 더불어 잔치를 베풀고 바다의 큰 고기를 잡은 뒤 돌아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수 차례의 중수를 거친 태화루는 임진왜란때 병화를 입어 불타 사라졌다. 태화루는 이후 중건되지 못한 채 영조 20년(1744) 현판을 학성관 종루에 걸어 명맥만 유지해 오다 1940년 울산공립보통학교의 교정 확장으로 울산객사의 남문루를 현재의 이휴정 자리(남구 신정동)로 옮기게 되면서 현판도 이전하게 됐다.

울산시는 오는 2011년까지 488억원을 들여 중구 태화동 구 로얄예식장 일대 1만873㎡에 태화루를 복원할 예정이다. 누각은 밀양 영남루를 본따 정면 5칸과 측면 4칸의 일자형으로 복원한다.



#이휴정

태화루의 현판이 보관돼 있는 이휴정(울산문화재자료 제1호)은 조선 현종때 울산의 문인 이동영이 1662년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다. 이휴정도 목조건축물이 그렇듯이 숱한 화마를 당하는 질곡의 세월을 이어왔다.

영조 47년(1771년)에 정자에 화재가 나 불에 탄 것을 1775년 부사 윤득림이 중건했고, 순조 32년(1831년)에도 불이 나서 그해 민치문이 새로 세웠다. 이후 1940년 학성이씨 월진파가 매입, 오늘의 자리에 옮기면서 개조했지만, 지난 2003년 9월 화재로 또다시 소실돼 원형이 훼손됐다.

이휴정은 울산시가 국비 등 총 4억6500만원을 들여 올해 4월20일 준공 낙성식을 가지면서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복원된 이휴정은 정면3칸, 측면2칸의 정자형식이다.



#입암정

울산의 선비나 지역에 부임해온 관료들은 나랏일이나 글공부에 지치면 때때로 정자에 머물며 풍류로 머리를 식혔다. 봄과 가을에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여름에는 탁족(濯足)으로 더위를 피했다. 엄동설한에는 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를 노래했다.

울산 12경의 하나인 태화강 중류의 깎아지르는 듯한 선바위(울주군 범서읍) 위에 지어진 입암정도 시인 묵객과 향인들이 시를 읊조리고 노래를 부르고 자연을 노래했던 곳이다. 조선 정조(1796년)때 울산도호부사 이정인이 지었다.

입암정은 태화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빼어난 경관으로, 당시 선비들의 학습장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 곳에서 시를 짓고 성리학을 연구한 이원담은 송옹문집을 펴냈다.



#관서정

태화강과 지류인 대곡천에서 흘러든 물이 만나는 울주군 범서읍 사연리 곡연부락에는 관서정이 있다. 200여년전인 조선 영·정조때 경주김씨 김경이 맑은 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계곡위에 지은 정자다.

현재의 건물은 해방이후 김경의 후손들이 다시 중건한 것이다. 한폭의 그림같은 주변절경으로 인해 이 정자에도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와 문학을 논했다. 조선 정조때 권상일이 울산도호부사로 재직하면서 이 곳의 경관에 취해 '관서정'이라는 시를 남겼다.

1965년 이 정자 위에 사연댐이 건립되면서 옛날과 같은 경승을 지금은 다시 볼수 없다.



#작천정

작괘천 계곡의 너럭바위 위에 지어진 작천정(울주군 삼남면 교동리)은 입암정과 함께 현존하는 울산의 정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주변 풍광을 자랑하는 정자다. 정자 이름은 주변 바위들이 마치 술잔을 걸어놓은 듯이 생겼다고 해 붙여졌다.

조선 고종때인 1899년 울산군수 최시명이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지었으나, 이후 수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현재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변했다. 2005년 새로 지어진 건물인 탓에 고풍스러움은 사라졌지만, 신불산 홍류폭포에서 흘러내린 청정수가 희고 넓은 암반들을 휘돌아 흘러가는 모습과 작천정 벚꽃을 배경으로 해 아직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울산의 정자는 이처럼 지역 선인들이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낸 문화의 산물이다. 세월의 흐름속에서 사라지거나 훼손되어 그 옛날의 풍광을 잃어가고 있지만, 현대의 아파트단지나 공원에도 지어져 면면이 맥을 잇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여유와 낭만을 만끽하려한 선인들의 숨결을 울산의 정자 탐방으로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김창식기자 goodg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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