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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밤은 낮의 번잡함 대신 속세의 번뇌를 잊게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달 밝은 밤 대웅전에서 내다보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불국의 신비를 그대로 보여준다.


수많은 인파 드나드는 저잣거리 소란함 대신
교교한 달빛 아래 정결한 종소리 번뇌 털어내
남산 위 영롱한 별들 신라 비추던 그 빛이던가




환갑을 넘어선 사람들 중에는 신혼여행으로 불국사를 다녀온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60년대만 해도 불국사는 우리나라 유일의 관광명소로 '관광 한국'하면 가을단풍으로 곱게 물들었던 불국사 사진이 등장했다. 오죽하면 박정희 장군이 63년도 민정 이양 대선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서울을 떠나 쉬려고 찾았던 장소가 이곳 불국사 호텔이었을까.

그러나 불국사는 박 대통령 시절에 많은 손질을 당했다. 정부는 69년부터 불국사에 대한 발굴 작업을 시작했고 73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했다. 그런데 이때 너무 많은 손질을 해 오늘날 불국사를 찾는 사람들은 옛 사찰의 맛을 느끼기가 힘들다.



불국의 세계를 뜨거운 가슴으로 보기위해서는 밤의 불국사를 보는 것이 좋다.

요즘 불국사는 하루에도 수 천 명의 여행객들이 드나들고 있어 저자 거리를 방불케 한다. 특히 학생 단체 여행객들을 만나면 이들의 소란함 때문에 불국사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가 없다.

가수 현인씨는 해방 후 '신라의 달밤'이라는 노래에서 '아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리가 들리어 온다'면서 적막한 불국사의 밤을 노래했다. 이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왜 불국사 노래에 밤이 등장할까 하고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의문은 불국사에서 하룻밤을 지내 본 사람이면 누구나 풀리게 된다. 불국사는 창건 후 1200여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동안 엄청난 낮과 밤이 반복되었다. 그동안 불국사가 낮에 보인 얼굴이 외형적이었다면 그의 속심은 밤에 몰래 보여주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달 밝은 새벽 대웅전에서 내다보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불국의 신비를 그대로 안고 있다.

산사에서는 새벽 3시가 되면 하루를 깨우는 목탁이 울린다. 산사의 적막을 깨우는 소리로는 종소리도 있다. 종소리는 번뇌를 끊고 부처의 지혜를 얻게 한다. 산사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수도자들이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고 부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힘을 준다.

천년을 넘도록 불국사의 새벽을 열었던 목탁과 종소리. 그런데 천년을 넘어 울린 이 소리들은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새벽에 절 마당을 걸어보면 천년의 세월에 묻힌 이런 소리들이 다시 들려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토함산이 토해 내는 숨결을 들을 수 있고 아래 뜰에 서 있는 석가탑에서 아사녀와 아사달의 슬픈 전설을 발견할 수 있는 때도 새벽이다.

새벽 불국사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별을 보는 것도 좋다. 불국사에서 보는 별은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불국사에서 보이는 가장 아름다운 별은 남산위로 보석처럼 흩어져 있는 별이다. 남산위에 머물고 있는 별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목탁 소리와 풍경 소리가 사라졌을 때이다.

목탁 소리와 풍경소리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흩어져 갔지만 남산에 비치는 별은 천 년 전 불국사를 비추었던 신라의 그 별빛이다. 이 별빛 아래 서면 천 년 전 불국사의 모습이 다시 보인다. 이 때 보이는 불국사는 매일 해만 뜨면 많은 방문객들을 맞아야 하는 피로한 사찰의 모습이 아니고 부처의 세계를 그대로 지상에 옮겨놓은 아름답고 장엄한 모습이다.

그러나 불국사의 숨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부처 세계의 신비로움과 경건함 그리고 영화로움과 자랑스러움 못잖게 슬픔이 있다.

신라는 불국사 건립 후 쇠망기를 맞게 된다. 불국사가 건립된 경덕왕 때는 석굴암과 황룡사 대종 등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경덕왕이 이처럼 힘에 겨운 불사를 일으킨 이면에는 문화의 창건이라는 노력도 있었지만 자신의 시대가 지나면 신라가 쇠망의 길로 들어설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경덕왕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신라의 영광을 부처의 힘을 빌려 연장시키고 싶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경덕왕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혜공왕 시대가 되면 왕권이 약화되고 이를 기회로 반란이 일어나는 등 급격히 쇠망해져 하반기를 맞게 된다.

임진왜란 때는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불국사에 탄약고를 설치해 건물이 훼손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사찰 전체가 해체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런 수난은 해방 후에도 이어져 박정희 때는 사찰 전체가 현대식으로 복원되어 옛 정취를 잃었고최근에는 스님들이 사역에 실내 골프장까지 설치해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절 입구에 걸리는 현수막 역시 사찰의 분위기를 흐린다. 한 때는 석굴암 주차장에 있는 종이 깨어졌느니 그렇지 않느니 하는 문제를 놓고 모 방송국과 불교계가 실랑이를 벌이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 있더니 최근에는 또 고속전철 경주통과를 비난하는 현수막이 한해 내내 날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요즘은 불국사 정문 앞에 있는 공중전화로 부모에게 안부 전화를 걸자는 체신부 홍보 현수막까지 걸렸다.

그런데 이들 현수막의 내용을 보면 사안에 대한 주장이 너무 강력하고 상업적이 되어 사찰 현수막으로는 어울리지 않을 때가 많다. 변화는 어려움을 수행하지만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전해야 할 불국사가 이런 외부의 잘못으로 옛 모습을 잃는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손실이 될 것이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